주교님,
이전 편지에서, 저는 프와요 신부님에게 독립된 구역을 배정해 주기 위해 원주와 풍수원의 두 구역을 분할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이 풍수원 근방과 홍천, 춘천, 양구, 낭천 및 가평을 사목하면 될 것입니다. 이 구역의 신자는 1,200명에서 1,300명 정도일 것입니다. 프와요 신부님은 용소막, 제천, 충주, 증평, 평창, 영월을 맡으시면 될 것입니다. 신자는 1,000명 내지 1,100명 가까이 될 것입니다. 저는 광주, 양근, 지평, 원주, 횡성과 강릉 그리고 여주의 일부 지역을 사목하면 될 것입니다. 이런 방식이라면 아우구스티노 신부님과 프와요 신부님의 두 구역은 (사목하기에) 매우 잘 구분될 것입니다.
(‘드브레드 신부가 뮈텔 주교에게 보낸 1904년 1월 23일 자 편지’ 중에서, 136~138쪽)
주교님,
한국을 떠나와서야 그곳에서 살 때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나 봅니다. 저희는 잃어버린 그 행복을 매일 생각합니다. 부디 그 행복을 곧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불행히도 저희가 언제 그 행복을 향해 출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별은 아직 전혀 없습니다.
저는 여전히 샬롱쉬르마른에서 가엾은 환자들 곁에서 같은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큰 변화 없는 날들이 이어집니다. 확실한 것은 저희의 존재가 이곳에서 큰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게서 더 좋아하는 것은 군복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드브레드 신부가 뮈텔 주교에게 보낸 1914년 11월 14일 자 편지’ 중에서, 235쪽)
친애하는 제라르 신부님,
조제 신부님이 당신께 편지 부치는 기회를 이용해서 제가 빠트렸던 사항을 간단히 적어 동봉합니다. 뮈텔 주교님과 드망즈 주교님은 시복식을 위해 프랑스에 갈 채비를 하고 계시며, 날짜를 알고 싶어 초조해하고 계십니다. 이에 관한 확실한 정보를 얻으시면 저희에게 전보로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드망즈 주교님은 (시복식) 날짜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준비를 하기 위해 그 날짜를 신속히 알고 싶어 하십니다. 라리보 신부님이 파리에 도착한 이후로 여전히 편지가 없습니다.
(‘드브레드 부주교가 제라르 신부에게 보낸 1924년 7월 31일 자 편지’ 중에서, 416~417쪽)
주교님께서 가급적 1925년 안에 새로운 선교사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은 뮈텔 주교님과 저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상업학교에 항상 매우 관대하게 베풀어 주시는 당신의 도움은 그 어느 때보다 환영받을 것입니다. 뮈텔 주교님께서 조만간 학교 현황과 한국의교육 사업이 얼마나 대표적인 선교 사업이 되었는지 직접 말씀드릴 것입니다.
바티칸 박람회에 보낼 상자들 재작업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물품 일부는 교체가 불가능하여 다소 손상된 채로 보냅니다. 가치가 떨어지는 물품들은 뺐습니다만 전반적으로 물품의 수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이 물품들이 매우 늦게 도착한다는 것이지만, 이 모든 것이 저희의 의지와는 무관합니다.
(‘드브레드 부주교가 게브리앙 총장 주교에게 보낸 1924년 12월 6일 자 편지’ 중에서, 437쪽)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