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조선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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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조선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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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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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조선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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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6-09-09 상품코드 130381
판형 154*224mm 상품 무게 0.00g
ISBN 978-89-321-2002-7 04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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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인물·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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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겠습니다.”

목자 없는 조선 신자들의 부름을 받고 응답한

초대 조선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신부

1801년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뒤, 조선의 신자들은 오랫동안 성사를 집전할 사제 없이 신앙을 지켜야 했다. 정하상과 유진길을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은 북경과 로마를 향해 거듭 선교사 파견을 청했지만, 박해의 위험과 입국의 어려움, 인력과 재정 부족 때문에 조선 선교를 맡으려는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시암 대목구에서 활동하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브뤼기에르는 이 소식을 접하고 자신이 조선으로 가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파리 본부와 교황청에 알렸다. 그의 자원은 한 선교사의 개인적인 결심에 머물지 않았다. 1831년 9월 9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조선 대목구를 설정하고 브뤼기에르 주교를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하면서, 조선 교회는 독립된 선교 교구로서 보편 교회 안에 자리를 갖게 되었다.

《초대 조선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평전》은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성장한 소년이 교구 사제와 신학교 교수, 아시아 선교사를 거쳐 조선의 첫 목자로 부름받기까지의 과정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독자는 이를 통해 ‘초대 조선 대목구장’이라는 직책 뒤에 가려져 있던 한 인간의 성장과 선택, 그리고 자신이 만나지 못한 신자들을 책임지기로 한 결단을 함께 만나게 된다.

브뤼기에르 신부는 조선 선교지 문제를 파리 본부 신학교의 지도자 신부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 브뤼기에르 신부의 1829년 5월 19일 서한은 본인이 조선 선교사로 다시 파견되기를 희망한 첫 번째 의사 표시였다.

─ 제8장 ‘제가 가겠습니다’ 중에서

기다림과 위험 속에서 끝내 조선 땅을 밟지 못했지만

사명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3년의 여정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 대목구장 임명 소식을 받은 곳은 페낭이었다. 그는 시암 선교지를 떠나 싱가포르와 마카오를 거친 뒤 중국 남부에서 북쪽 국경을 향하는 긴 여정에 올랐다. 성능이 좋지 않은 배와 역풍, 해적의 위험으로 며칠이면 갈 수 있는 바닷길에서 75일을 보내기도 했으며,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중국식 복장을 하고 밤길과 운하, 산길을 이용해야 했다. 선교사들 사이의 관할권 갈등과 비협조, 조선 교우들과의 연락 두절, 체포 위험과 질병도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조선 입국 방법을 찾고 후임 선교사를 확보했으며, 신학생 양성과 선교 자금, 조선 교우들과의 연락 방식까지 준비했다. 마침내 조선 국경을 향해 서만자를 떠났지만, 1835년 10월 20일 마가자 교우촌에서 선종하여 생전에 조선 땅을 밟지는 못했다.

이 책은 그 죽음을 감상적인 비극이나 단순한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개척한 이동 경로와 남긴 기록, 후임 선교사들을 위한 준비가 모방 신부를 비롯한 뒤이은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이어졌음을 구체적인 사료를 통해 보여 준다. 목적지에 도착했는가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판단하기보다, 맡은 사명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남겼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평전이다.

하느님의 섭리는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위험을 피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만일 내가 잔뜩 겁을 먹고 뒷걸음을 친다면 하느님의 꾸중을 들을 것이며, 교황님께서도 나무라실 것입니다. 나는 내 행로의 종착점에 다다를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방법을 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나는 내 발길을 돌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 제13장 ‘북경 교회의 수상한 동향’ 중에서

서한과 여행 기록을 넘어,

한 사람의 생애를 만나다

《브뤼기에르 주교 서한집》이 브뤼기에르 주교가 주고받은 편지와 관련 문헌을 통해 그의 생각과 신앙을 들려주고, 《브뤼기에르 주교 여행기》가 1832년 페낭을 떠난 때부터 1835년 서만자를 출발하기 직전까지의 여정을 전한다면, 이번 《초대 조선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평전》은 그 기록들을 한 사람의 전체 생애 안에 놓는다. 유년기와 프랑스 대혁명기의 교회 상황, 카르카손 교구 사제 시절, 파리외방전교회 입회와 시암 선교, 조선 선교 자원과 대목구 설정, 중국 횡단과 선종, 후임 선교사들의 활동과 1931년 유해 이장까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한다.

저자는 교회 문서고의 사료와 선행 연구를 검토하고, 브뤼기에르 주교의 흔적이 남은 프랑스와 동남아시아, 중국의 여러 지역을 직접 답사하며 오랜 기간 집필을 이어 왔다. 그 결과 독자는 서한의 한 구절과 여행기의 한 장면이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나왔는지 이해하고, 브뤼기에르 주교의 성품과 판단, 갈등과 한계까지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현재 서울대교구가 그의 시복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 평전은 그를 영웅적인 이미지로만 기억하기보다 실제 선택과 기록을 통해 알아가도록 돕는다. 한국 천주교회사에 익숙한 독자는 물론, 사명과 책임, 기다림과 인내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싶은 일반 독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인물 평전이다.


목차

축사 · 5

추천사 · 9

제1부 레삭의 소년에서 시암 왕국의 선교사로

제1장 탄생과 어린 시절 · 22

제2장 카르카손 교구 사제 · 39

제3장 파리 외방전교회의 문을 두드리다 · 56

제4장 시암 대목구 선교사가 되다 · 74

제5장 방콕으로 가는 길 · 94

제6장 방콕에서의 선교 활동 · 115

제2부 초대 조선 대목구장이 되다

제7장 조선 교우들의 선교사 요청 · 146

제8장 제가 가겠습니다 · 182

제9장 교황청에서 내린 결정들 · 217

제10장 시암 선교지를 떠나며 · 238

제11장 환대와 냉대가 엇갈린 마카오 체류 · 258

제3부 조선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

제12장 고난의 중국 종단 · 294

제13장 북경 교회의 수상한 동향 · 346

제14장 조선 교우들을 설득하라 · 386

제15장 신생 교회를 위한 안배들 · 434

제4부 풍성한 수확을 예비하는 밀알이 되어

제16장 드디어 조선을 향하여 · 478

제17장 마지막 모습 · 502

제18장 뒤를 이은 사도들 · 521

제19장 꿈에도 그리던 조선 땅으로 · 541

미주 · 554

참고 문헌 · 588

브뤼기에르 주교 연보 · 603

감사의 말 · 634

저자 소개
지은이 : 조현범
지은이 : 조현범 
1967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2002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07년 한국교회사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되었다. 2013년에는 한국학중앙원 교수가 되었다.

주요 저서
《문명과 야만》, 책세상, 2002.
《조선의 선교사, 선교사의 조선》, 한국교회사연구소, 2008.
《(조선에서 파리까지) 편지 따라 역사여행》, 너머학교, 2013.

책 속으로
교황님께서 저희에게 베풀어 주실 도움에 관하여 동시에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하나를 빼고 다른 하나만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 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배고픔으로 죽음에 이릅니다. 한 달 뒤에 양식을 얻게 되어 있다고 해도 지금 당장 허기를 면하게 해 줄 음식이 조금이라도 없으면, 어떻게 그가 미래의 양식에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반대로 다음 달 양식을 얻을 수 없다면, 오늘 음식을 조금 먹는다고 해도 헛된 일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제들이 파견된다면 그들은 큰 은혜가 될 것이므로 저희는 커다란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이 길은 저희의 필요를 영속적으로 채워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완벽한 결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먼저 사제들을 보내어 저희의 긴급한 필요를 도와주게 하고, 그다음에는 배가 도착하는 것이 자유로이 신앙을 선포하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 제7장 ‘조선 교우들의 선교사 요청’ 중에서

브뤼기에르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가 포교성성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선 선교지를 맡아야 한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파리 본부에 알렸다. 1829년 5월 19일과 1830년 6월 22일, 그리고 1831년 4월 8일, 이렇게 최소 세 차례 이상 서한을 보냈다. 그러면서 현재 파리외방전교회가 담당하고 있는 대목구들의 상황을 고려할 때 재정과 인력이 부족하다면 브뤼기에르 주교 본인이 우선적으로 조선 선교사로 가겠다고 하였다. 또한 같은 내용을 담아서 로마 포교성성에도 서한을 보냈다. 포교성성에 청원 서한을 보낸 것 역시 1829년 6월 9일과 1829년 10월 1일, 1830년 1월 31일, 이렇게 세 차례가 넘는다. 이러한 노력과 정성에 감동하여 브뤼기에르 주교의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 제9장 ‘교황청에서 내린 결정들’ 중에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증언에 따르면, 마카오에서 복건 대목구장의 주교관이 있는 곳으로 가는 바닷길은 길고도 지루하며 힘들었고, 때로 위험하였다고 한다. 실제 거리는 200리외(800㎞)를 넘지 않아서 유럽 선박으로는 3일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일행은 중국 배의 성능과 중국 연안 사정을 고려하면 4주 정도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복건 주교관까지 가는 데 무려 75일을 소요하였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배의 성능이 좋지 못해서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연안을 따라서 항해하다가 역풍이 불면 해안에 정박하여 바람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광동과 복건의 해안 지역은 해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어서 유사시 가까운 항구로 피신했다가 안전해지면 다시 배를 띄워야 했다. 이 때문에 복건으로 가는 여정은 여러 차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 제12장 ‘고난의 중국 종단’ 중에서

엎드려 생각건대 저희 조선은 주문모 신부님께서 치명하신 이후 30여 년 동안 한 명의 목자도 없었습니다. 뭇 어린 양들이 갈 바를 잃고 슬피 울고 있을 때 다행히도 천주의 불쌍히 여기심을 입어 작년 겨울 여(余) 신부께서 조선으로 오시어 무사히 국경을 넘으셨고 일 년 동안 몸을 온전히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또 소(蘇) 주교께서 죽음의 위협과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동쪽 우리나라에 오셔서 그 이름을 영광되게 하겠다고 하시고, 생사와 위험을 돌보지 않고 뜻을 굳게 하여 국경을 넘음으로써 허원하신 바를 이루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하시니, 그 불과 같은 사랑과 충정에 감읍하여 마지않습니다.
                                                                                                                                                                                                                                                                               ― 제14장 ‘조선 교우들을 설득하라’ 중에서

그러면서 브뤼기에르 주교는 일기 형식의 단순한 이야기로 썼고, 자신의 뒤를 이어서 조선으로 오게 될 젊은 선교사들에게 유용한 글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조선 선교지가 자신들의 열의에 안겨 줄 여러 가지 위험과 희망들을 알려 줄 것이며, 브뤼기에르 주교 본인이 저지른 실수와 경솔함을 통해서 성공의 방도들을 보여 줄 것이라고 하였다.
                                                                                                                                                                                                                                                                                  ― 제16장 ‘드디어 조선을 향하여’ 중에서

신부님은 이런 간략한 설명만으로 저의 상황이 인간적인 견지에서는 좋지 않다는 것을 아실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제 임무가 신성한 것이고, 또 직접 저를 파견한 분은 바로 교황 성하이시라는 것을 굳게 믿기 때문에 오직 천주님만을 의지합니다. 저는 도중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체포되기 전까지는 제 여정의 목적지를 향하여, 천주님의 섭리에 몸을 맡기고 머리를 숙인 채 위험을 헤쳐 나갈 것입니다.
                                                                                                                                                                                                                                                                                  ― 제16장 ‘드디어 조선을 향하여’ 중에서

100년 동안에 얼마나 변했는가! 우리 주교 계열의 첫째인 공경하올 주교는 초인간적인 노력과 전대미문의 피로를 겪은 후에도 조선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의 유해는 오늘 한 세기 후에야 그의 제8대 후계자와 그가 목숨을 바친 전 조선 교회에 의하여 받아들여지도록 이전에는 무서웠던 국경을 넘었다.
                                                                                                                                                                                                                                                                            ― 제19장 ‘꿈에도 그리던 조선 땅으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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